-탐진군파(耽津君派)

 

1) 탐진군파(耽津君派)의 유래

탐진군파 파조(派祖) (諱) 원린(元璘)의 초휘(初諱)는 원륜(元崙)이며, 순흥안씨(順興安氏) 7세로 문숙공(文淑公) (牧: 號 謙齋)의 셋째 아들로 고려 충숙왕 11(1324 甲子)에 출생 하였다.

고려 충혜왕 2(1341 辛巳)에 맏형 원숭(元崇)과 둘째형 원형(元衡)과 함께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정당문학(政堂文學) 검교중추원사(檢校中樞院事)를 지내고, 그 공을 인정받아 탐진군(耽津君)의 군호(君號)를 받음으로서 탐진군파의 파조(派祖)가 되었으며,

 

시호(諡號)가 문열(文烈)인데 문열(文烈)"이라 함은 근학호문(勤學好問: 배움을 부지런히 하고 묻기를 좋아함)하여 (文)"이라 하고, 충군자민(忠君慈民: 임금께 충성하고 백성을 사랑함)하여 (烈)"이라 하였다.

 

공의 배위(配位)는 완산 군부인(完山郡夫人) 전주최씨(全州崔氏)이며,

아들 삼형제를 두셨으니 맏이 우(祐)는 추충절의정난공신(推忠節義定難功臣) 중서평장정사(中書平章政事)인 오성군(鰲成君)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둘째 예(禮)는 판밀직제학 상장군(判密直提學上將軍)이며. 세째 도(堵)는 우헌납(右獻納)이다.

공의 졸년(卒年)은 전해지지 않으며, 묘소(墓所)가 경기도 장단(長湍: 현 개성 인접지역)의 대덕산에 문성공 회헌(文成公 晦軒) 선조와 문숙공(文淑公)의 묘역에 있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고, 배위(配位)의 묘소가 경남 창녕군 계성면 갈현에 있다고 전하나 표시가 없어 찾지 못하여, 후손들이 1943(癸未)년에 전주시 삼천동 능내리에 현손(玄孫)인 사종(士宗)의 묘소 위에 단비(壇碑)를 세우고 음력 33일에 제향(祭享)을 봉행한다.

 

*숭경재(崇敬齋)

숭경재는 탐진군파의 파조 탐진군과 오성군, 병판공, 의정공, 찬성공등 오위공(五位公)의 재실(齋室)1959(己亥)년 후손 동준(東畯)과 정욱(貞旭)이 앞장서고 여러 종원의 합심과 협력으로 전주시 삼청동 능내리에 건립하였다.

1975(乙卯)년에 후손 칠상(七相: 헌납공문중)의 주선으로 중수 하였으며, 2002(壬午)년 후손 영덕(永德: 오성군문중)이 주관하여 철판 기와로 교체(交替)하였다.

 

2) 탐진군파(耽津君派) 분파도(分派圖)

 

1 世 始祖 子美(順興君)

2 世 永儒(樞密公) 1 永麟(別將公) 2 永和(敎書公) 3

3 世 孚(太師公)

4 世 珦(文成公)

5 世 于器(文順公)

6 世 牧(文淑公)

7 世 元崇(文惠公) 元衡(文惠公) 元璘(文烈公)

竹城君派祖 耽津君派祖

8 世 祐(文忠公) (上將軍公) (獻納公)

   鰲城君